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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튀르키예의 역사(다양한 문명의 유산과 역사적 변천사)

by 은퇴바래기 2023. 7. 12.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수많은 문명들의 발원지로서 막대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튀르키예의 다양한 역사와 그것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튀르키예국기

 

튀르키예의 고대 문명의 발자취

히타이트 제국 인도는 기원전 1600년경부터 기원전 1178년까지 튀르키예 중앙부의 고대 국가였습니다. 이들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했으며 중앙화된 정부와 건축, 금속공예, 전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전투에서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실크로드의 한 축인 이 지역에서는 다른 문명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이 망한 뒤, 튀르키예 지역은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이 땅은 아키메네스 왕조와 페르시아의 다른 지배 계층들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그들은 금속공예와 예술, 건축 등의 발전과 함께 고대 이란 문화와 전통을 가르쳤고, 튀르키예 지역의 문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내심에 문제가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막대한 군사력에 맞서길 힘겨워했습니다. 결국 기원전 330년경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배하게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정복을 계속 이어나가며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지역은 페르시아로부터 독립하여 여러 다른 국가들로 나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셀레우코스 제국이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그리스 문화를 도입하며 이 지역의 문화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 제국이 점차 확장하며 이 지역도 로마로 흡수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고대 문명들의 발자취가 오늘날의 튀르키예 문화와 정치의 기초를 마련했고 뒤이은 역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현재의 튀르키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튀르키예의 로마와 동로마 제국의 발자취

로마 제국의 영토는 기원전 2세기부터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걸쳐있었고, 튀르키예는 그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129년 경에 튀르키예에 위치한 고대 야누아를 정복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이 후 튀르키예 사람들은 로마 문화와 건축양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대표적으로 튀르키예의 에페소스(Ephesus)와 페르가몬(Pergamon) 도시는 로마 문화의 복잡한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us)는 동방에서 시작하여 여러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 낸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으로 분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현 이스탄불)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나라의 공식 종교로 채택했습니다. 튀르키예 역시 이 영향력을 받아 기독교 전통과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1,000년 동안 넓은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튀르키예의 오스만 제국 시대: 황금기와 정체기

오스만 제국은 튀르키예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고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며 그 시작을 알리게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막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중동, 주변 아시아 지역, 북아프리카, 유럽에까지 걸쳐있었습니다. 황금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중 건축물과 예술 작품의 제작이 그 기간을 대표하고 특히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Aya Sofya(거룩한 지혜’라는 뜻)와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등은 이 시기의 건축물의 일환입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점차 군사력과 중앙 집권체계의 약화로 정체기를 맞이하게 되고 제국의 경제, 기술 발전을 이끌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제도개혁과 실패에 따른 한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정책을 수용하지 못한 오스만 제국은 점차 본래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었고 마침내 1922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의 독립운동 덕분에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롭게 튀르키예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건국자이자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튀르키예의 독립과 강인한 튀르키예 공화국의 시작

1923년 대표적인 리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 하에,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이 무너진 후 독립 공화국으로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튀르키예 공화국은 국민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이루었습니다. 또한, 아타튀르크는 교육,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했고 이런 노력 덕분에 튀르키예는 세계에 알려진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튀르키예는 전통과 근대화가 어우러진 나라로, 계속해서 발전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지으며,

이렇게 튀르키예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과 제국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오랜 변천사는 현재의 튀르키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오늘날의 튀르키예는 이러한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자랑하면서도, 독립과 현대화를 추구하며 역사의 무게를 견뎌내고 앞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인플레이션 및 지진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잘 극복하고 이겨냈으면 합니다.